임예택 '무명 반란' 임예택 "울며 했던 골프, 우승하고 멋진 선수 되고 싶어" [GD 바운스백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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'귀족 스포츠'라 불리는 골프를 하면서 눈물 젖은 빵 한 번 안 먹어본 선수가 몇이나 될까. '무명 반란'을 일으켰던 임예택(25)도 그중 한 명이다.
임예택은 지난달 열린 한국프로골프(KPGA) 코리안투어 아너스K·솔라고CC한장상인비테이셔널(총상금 5억원) 때 주목받았다. 대회 예선을 뚫고 출전한 그는 3라운드 선두에 올라 최종 라운드에서 고군택(24)과 연장전까지 치렀다. 비록 우승하진 못했으나, 이름 석 자를 알리는 데 성공했다.
"우승한 것도 아닌데 축하를 많이 받았다." 머쓱한 듯 씩 웃던 임예택은 "더 긴장되는 것도 없었다. 나는 어느 대회든 항상 첫 홀 티 샷만 딱 긴장되고 그 이후로는 똑같다. 연장전이 끝났을 때는 '끝났다. 그리고 졌다' 하는 생각이었다"고 입을 열었다.
3라운드 때만 하더라도 샷 감이 20%밖에 오르지 않아 걱정했지만, 임예택은 최종 라운드에서 그렇게 샷이 잘 나갈 수 없었다고 떠올렸다. 캐디로 함께 나섰던 아버지와 함께 본 퍼팅 라인도 척척 맞아떨어졌다. 아쉬움은 컸지만, 준우승한 아들은 아버지에게 "정말 대단하다"는 칭찬으로 희열에 찼다.
임예택은 12살 때 처음 골프를 배웠다. 프로 선수에 비해서는 늦게 골프를 시작한 셈이다. 대회는 18살에 처음 나갔다. 또래 선수들은 국가대표로 나설 때 처음으로 경쟁에 놓인 것이다.
그가 골프를 배우고 나서 가족들은 제주도로 이사했다. 아버지는 펜션을 관리하며 생계를 꾸렸다. 펜션 다락방이 임예택의 방이었다. 소위 자녀를 골프 선수로 키우려면 집 한 채 값이 든다고 하는데, 집안 형편은 임예택이 편하게 골프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.
"나는 몰랐다. 그냥 '제주도로 이사 왔으니 골프를 해야 겠구나' 하는 정도였는데, 아버지는 매일 우셨다고 하더라." 덤덤하게 옛이야기를 풀던 임예택은 부모님의 사랑 덕분에 결국 프로 선수가 됐다. 아버지는 펜션 앞 모래사장에 임예택만의 연습 타석을 만들어줬을 만큼 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.
"아버지가 바다를 향해서 스윙할 수 있게 연습 공간을 만들어주셨다. 플로트 볼이라고 일반 공보다 가볍고 물에 뜨는 공이 있다. 바닷물이 빠질 때 제주도 해변이라 돌로 둘러싸인 웅덩이들이 생기는데, 그 웅덩이 안으로 공을 쳤다. 그러다 물결 때문에 공이 떠밀려 오면 아버지가 공을 주워 오셨다."
아버지가 아들에게 골프와 낭만을 선물했다면, 어머니는 자신감을 줬다. 어머니는 늘 그에게 '네가 잘될 날은 무조건 온다. 그게 언제일지는 모르지만, 엄마는 늘 믿는다'고 얘기했다. 두 살 터울 누나도 남동생이 툭 터놓고 속 얘기를 할 수 있는 절친 같은 존재다.
온 집안이 똘똘 뭉친 덕분일까. 임예택은 프로가 된 후에도 가족들의 지지 속에 연습에만 매진했다. 20대가 되면서 더 골프에 매진하고자 천안으로 홀로 이사해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 연습했다. 한 번은 퍼팅이 잘 안되자, 마음먹고 공을 하루에 2000개씩 굴렸다고 한다. 하루에 6시간이 꼬박 걸렸다.
"우승해서 돈도 많이 벌고 싶다. 골프 선수로서 그게 내가 해야 할 일 아닌가. 멋있고 카리스마 있는 선수로 남고 싶다. 아, 우선 당장은 군산CC오픈에서도 잘해서 그다음 대회에도 나가고 싶다."
사진_김시형(49비주얼스튜디오) / 헤어·메이크업_칼라빈 by 서일주